1392년에 건국되어 5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조선은 1910년, 불과 40년 사이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조선은 안팎의 도전에 시달리며 왕정 체제의 붕괴와 함께 대한제국의 몰락, 그리고 일제강점기로 접어들게 됩니다. 오늘은 조선의 26대 왕 고종의 즉위부터 멸망까지, 결정적인 역사적 흐름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고종의 즉위와 흥선대원군의 섭정
1863년, 고종은 12세의 나이로 즉위합니다. 어린 나이였기에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하게 되고, 대원군은 안동 김씨 세도 정치 척결, 비변사 폐지, 호포제 시행, 서원 철폐 등의 개혁을 단행합니다. 하지만 통상 수교 거부 정책으로 외세에 대한 대응력이 약화되며,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 같은 외세 침략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2. 고종 친정과 명성황후의 정치 등장
1873년, 고종은 친정을 시작하고 명성황후의 여흥 민씨 가문이 정권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이후 조선은 개화와 보수, 청나라와 일본, 온건개화파와 급진개화파 간의 갈등으로 끊임없는 혼란을 겪게 됩니다. 특히 1876년 강화도 조약은 일본과의 첫 불평등 조약으로,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하는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3. 끊이지 않던 혼란: 이모군란과 갑신정변
구식 군대의 차별에 분노한 병사들이 1882년 이모군란을 일으키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가 개입하면서 조선은 다시 외세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어 1884년 갑신정변에서는 급진 개화파가 정권을 장악하려 하지만, 청나라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하며 일본과의 갈등은 더욱 고조됩니다.
4.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
1894년,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조선 정부는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합니다. 이 틈을 탄 일본군도 개입하면서 결국 청일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일본이 승리하며 조선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은 결정적으로 강화됩니다.
5.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1895년 을미사변은 일본 세력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으로, 고종은 일본에 대한 극심한 불신에 빠지게 됩니다. 이후 1896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아관파천)하여 잠시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되지만, 그 대가는 자주권 약화였습니다.
6. 대한제국의 수립과 광무개혁
1897년, 고종은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돌아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합니다. 철도, 전신, 은행 등 근대 제도를 도입하며 광무개혁을 단행하지만, 열강의 압박 속에 자주적 개혁은 한계에 부딪힙니다.
7. 러일전쟁과 을사늑약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조선 내 일본의 입지는 더욱 강해집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며 외교권을 상실한 대한제국은 사실상 주권을 빼앗기게 됩니다. 고종은 1907년 헤이그 특사를 통해 이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려 하지만 실패하고, 강제로 퇴위당합니다.
8. 조선의 최후: 순종과 경술국치
고종의 뒤를 이은 순종은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였고, 일본은 군대 해산, 사법권·입법권 장악 등 국가 기능을 완전 무력화시킵니다. 결국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되며 조선은 공식적으로 멸망하고, 일제강점기로 접어들게 됩니다.
맺으며: 40년, 한 나라의 몰락을 지켜본 시간
조선의 멸망은 단지 외세의 침략 때문만은 아닙니다. 내부의 부패, 무지, 갈등과 더불어 외교력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고종의 즉위부터 순종의 퇴위까지, 겨우 40년 만에 무너진 한 왕조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줍니다.
※ 본 글은 2025년 최신 역사 콘텐츠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